대개 이민자라 함은 자신이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떠나 머나먼 곳에 도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자음악과 댄스 뮤직을 사랑해 온 삶은 한국 사회에서 나를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문화적 고립 속으로 안내했다. 바다 건너 먼 타지의 음악과 사람들, 네모난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끝내주는 레이브 이벤트와 DJ들의 스핀은 나를 이세계 속으로 데려갔다가도 불빛이 꺼지고 나면 나를 두고 저만치 멀어졌다.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내가 느끼는 문화적 디아스포라는 어딘가 내놓기엔 희미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절실한 알맹이였다.
foreign body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는 데서 출발했다. 어쩌다 보니 이 머나먼 한국 땅에 태어나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좇고 있는 사람들. 꿈을 꾸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와 가야 하는지 모른 채 앞길을 더듬으며 암흑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 외로우나 외로운지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나아가는 방법은 모르더라도 옆자리에 같은 꿈을 가진 사람과 온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딜 수 있기에, 비슷한 외로움과 서로 닮은 꿈이 모여 우리의 따뜻한 집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사실 섬나라와 같은 한국에서 댄스 뮤직을 업으로 삼는 것은 기반 공사가 되지 않은 땅에 집을 짓는 일과 같다. 사람들이 모이고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 클럽과 베뉴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일반 음식점' 업태로, 비가 오면 한순간에 찢겨 나갈 종이 간판을 세우고 영업 중이다. DJ와 프로듀서들은 주중에는 생업을 이어가고 주말에는 타임 페이 20만 원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나마도 불러주는 곳이 있는 현역 DJ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이들은 8만 원, 때로는 무급으로 공연한다. 프로 수준의 DJ라 할지라도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꽤나 도전적이고 고된 여정이다.
물론 해외라고 아주 다른 것은 아니다. 물가 상승, 음주 문화의 쇠퇴, 저출산 문제 등으로 전 세계의 클럽 씬도 때아닌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Teletech가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관객을 모으고 스포티파이의 댄스 뮤직 스트리밍 비중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절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근간인 클럽 씬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한국의 클럽들도 그 영향에 자유로울 수 없고, DJ들도 10년 전과 같은 타임페이를 받으며 활동하는 게 어찌 보면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터이다.
다만 한국, 특히 서울의 댄스 뮤직 시장에는 DJ와 프로듀서가 자국을 벗어나 자신의 시장을 해외로 넓힐 기반이 탄탄히 갖춰져 있지 않다. 부킹을 담당하는 에이전시, 아티스트 운영을 맡는 매니지먼트, 음원을 유통하는 레이블이 충분하지 않기에 대부분의 DJ는 직접 계약서를 검토하고, 최저가 경유 항공편을 검색하고, A&R에게 수없이 데모를 보내고, 모객하며 이벤트까지 만든다. 뉴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하여 이전보다 현저히 적은 비용으로도 전 세계 곳곳에 닿을 기회는 늘었지만 정작 DJ들은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찾는 일 바깥에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긴다.
이런 인프라의 부재는 해외 시장과 한국 시장의 커뮤니케이션 사이에 필요한 신뢰도의 절하로 이어진다. 위에 나열했던 에이전시, 매니지먼트, 레이블과 함께 이벤트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프로모터들의 역할은 씬을 굴러가게 하는 것과 더불어 이 문화 활동이 그저 취미의 영역을 넘어 영리 활동이 가능한 하나의 산업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의 증표이다. 서구권이 바라보기에는 하나의 큰 블랙박스에 불과한 아시아 시장에 수익을 만들 수 있는 파이프라인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아시아가 시장 확대의 기회보다는 'Asia Vacation Tour'에 그치기 마련이다. 때로는 상대의 무관심과 무시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아직 매력적인 시장이 되지 못한 것이다. K-POP을 보라, 느끼하고 유치하다고 십수 년을 놀림받아왔으나 앨범이 팔리고 시장이 굴러가니 이제는 서울로 짐을 싸들고 이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회사들은 산업의 톱니바퀴이면서 각자가 하나의 미디어로도 기능한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티스트들을 소개해 온 Ninja Tune은 당장 어젯밤 첫 곡을 써본 아티스트의 음악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네트워크와 팬덤을 향해 '이 음악이 앞으로의 미래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힘이 있다. 20년 경력의 에이전트들은 21살짜리 신인 DJ의 음악과 프로필을 들고 전 세계의 프로모터에게 메일을 보내 로컬 클럽부터 런던 레이브 이벤트, 스타디움급 북미 투어의 서포트 라인업까지 이어지며 신인 DJ가 실력을 키우고 팬덤을 확보할 수 있는 계단을 설계한다. 이러한 미디어가 충분하지 못한 지금 한국의 상황은 모든 DJ들이 바닥부터 자신의 브랜드를 쌓고 네트워크를 넓히고 카탈로그를 증명해야 하는, 유일한 확성기인 소셜미디어에 기대어 대박 조회수가 터지길 기도하는, 알고리즘에게 미디어의 볼펜을 쥐어준 형국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아티스트들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이를 뒷받침하고 증폭시켜 줄 수 있는 플랫폼이다. 만화 작가를 꿈꾸는 중학생이 네이버 도전 만화에 웹툰을 올리고, 래퍼를 꿈꾸는 아르바이트생이 KC 입단을 꿈꾸듯이, 댄스 뮤직 씬에도 바라보며 꿈꿀 수 있는 이정표가 되는 플랫폼이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이 녹록지 않더라도 믿음을 잃지 않고 버틸 힘을 주는, 다음 챕터로 들어갈 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아티스트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 해외 시장에 홀몸으로 도전해 단단히 자리를 잡아가는 개척자 같은 아티스트들도 많다. 다만 그들을 해외 시장에 소개하고 연결해 줄 다리가 부족하다. 왕복 180만 원의 비행기 값을 내고 30만 원짜리 공연을 해볼 금전적 여유가 없다면 런던의 프로모터와 맥주 한 잔을 걸치며 음악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기회조차 잡기 어렵다. 해외 아티스트를 우리나라에 초대해 관계를 맺고 씬을 소개하더라도, 클럽 쇼의 재정 규모만으로는 그 관계를 더 멀리 확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여름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런던의 작은 바부터 브리스톨의 클럽까지 우리를 소개하고 설득했다. 나 또한 새로 시작하는 일이기에 대단한 커넥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하며, 클럽에서,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다.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지만 믿는 구석은 하나였다. 우리 아티스트들을 일단 현장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그 뒤에는 그 누구보다도 끝내주는 공연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돈과 상관없이 우리의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연결해 주었다. 그렇게 20여 차례의 공연과 라디오 쇼 일정을 묶어 foreign body UK/EU Tour 2026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아티스트들은 뒤지는 공연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하나씩 연결 지어나간 커뮤니티들은 단발적인 만남이 아닌 지속적인 연결을 통해 또 다른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갔고, 그런 점들이 모여 한 줄의 선이 되고, 그림이 되어간다. foreign body를 시작하기 전 DJ, 프로듀서, A&R, 프로모터, 매니저, 에이전트, 그중 무엇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시작했던 일들은 시간이 쌓이고 고통을 견뎌낼수록 희미하지만 더욱 뚜렷하게 형태를 갖춰갔다.

지난 몇 년간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곁눈질로 배워온 것 중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각자 하는 업무의 형태는 다르더라도 이 산업을 지탱하는 본질은 똑같다는 점이었다. 마치 경쟁과 투쟁의 장이었던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가까이 다가가보면 그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고, 씬에 널려있는 배척과 견제는 융화와 좋은 음악 앞에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들과만 어울려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 문화를 지탱하는 것이지, 돈 많은 억만장자가 주인공이 아니다. foreign body도 이 믿음 위에 서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고,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한 채의 집과 같은 공간이 되고자 한다.
투어는 그 출발점이다.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BM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음악을 배우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경험하는 여행이다. 3년 또는 5년 뒤 맨체스터의 페스티벌에서, 이비자의 바닷가 카페에서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2026년 여름의 첫 투어를 기억하며 친구들과 잔을 기울일 미래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도전해보려 한다.

